어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이유 없이 호감이 생기거나 반감을 느낄 때가 있다.
같은 상황인데도 어떤 날은 평온하게 넘기고, 어떤 날은 괜히 짜증이 난다.
우리는 흔히 이럴 때 그냥 느낌이 그랬어, 내가 왜 그랬는지 나도 몰라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 나도 모르게 라는 말 속에는,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어도 존재하는 심리적 기제가 숨어 있다.
바로 무의식이다.
심리학에서 무의식은 의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의 사고, 감정,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내면의 영역을 말한다.
무의식은 잠재되어 있지만 매우 활동적이며, 때로는 의식보다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이번 글에서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이유 없는 행동과 감정이 어떻게 무의식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살펴보고,
그것이 어떻게 삶의 방향을 은근히 바꾸고 있는지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감정의 뿌리는 무의식 속에 숨어 있다
사람은 감정보다 먼저 감정의 조건에 반응한다.
이를테면, 과거의 기억, 반복된 경험, 익숙한 패턴들이 특정 자극을 감정적인 사건으로 만든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말투가 이상하게 거슬릴 때, 그 말투 자체보다 그 말투가 과거에 느꼈던 불쾌한 기억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현재의 감정은 지금 이 순간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 저장된 과거 경험의 잔향일 수 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빙산의 아래쪽에 비유했다.
수면 위로 드러난 의식은 빙산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며, 그 아래에는 훨씬 더 크고 깊은 세계가 자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무의식은 우리의 감정 반응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가끔 스스로도 왜 불안한지 모를 때,
왜 그 말 한마디에 과도하게 상처받았는지 설명할 수 없을 때,
그 이유는 단순히 지금의 사건 때문이 아니라 과거에 내가 그 감정을 얼마나 깊이 받아들였는지, 그리고 무의식이 그 감정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즉, 감정의 이유를 찾고 싶다면 지금 상황보다, 과거의 내가 그것을 어떻게 느꼈는지를 들여다보는 게 더 중요할 때가 있다.
무의식은 ‘반복’을 통해 메시지를 보낸다
심리학에서는 무의식이 우리에게 가장 자주 사용하는 언어는 패턴이라고 말한다.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거나 유사한 관계에서 비슷한 갈등을 겪는 경우가 그렇다.
이때 중요한 건 반복되는 상황 자체보다 그 상황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반복하고 있는가이다.
예를 들어 언제나 타인의 기대에 맞추려 하다가 결국 소진되는 사람,
자신을 늘 희생하며 관계를 유지하다가 상대의 무관심에 상처받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사랑받기 위해서는 나를 지워야 한다는 오래된 신념을 반복하고 있을 수 있다.
이런 반복은 대부분 어릴 적 형성된 관계 경험에서 비롯된다.
어렸을 때 부모의 인정을 받기 위해 순응하거나 갈등을 피하려 감정을 숨긴 경험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관계 속에서 같은 방식으로 재현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무의식적 각본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각본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수정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삶 속에서 같은 역할을 연기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같은 문제가 반복될 때, 문제 자체보다
나는 왜 이런 상황에서 같은 감정을 느끼는 걸까?
이 관계에서 나는 늘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지? 하고 되묻는 것이 중요하다.
그 질문은 무의식이 보내는 메시지를 읽는 열쇠가 될 수 있다.
무의식을 인식할 때 비로소 선택이 가능해진다
무의식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감정이나 욕구를 대신 표현한다.
그래서 그것을 외면할수록 더 강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억눌린 감정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터져 나오고,
외면한 욕구는 타인의 행동에 과도하게 반응하게 만든다.
하지만 심리학은 말한다. 무의식은 억누를 대상이 아니라, 이해해야 할 신호라고.
그리고 그 무의식을 의식 위로 끌어올리는 작업이야말로 우리가 스스로를 다르게 선택할 수 있는 첫 걸음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무의식을 인식할 수 있을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바로 감정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특정 상황에서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했거나, 유난히 마음이 무거웠던 날,
그 감정에 대해 왜 이렇게 힘들었지?라고 묻기보다,
이 감정은 나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라고 질문을 바꿔보는 것.
그리고 패턴을 기록하는 것도 무의식을 읽는 좋은 방법이다.
비슷한 감정이 반복되는 시기 유사한 갈등이 일어나는 상황을 적어보면,
그 안에 내가 자주 놓이는 심리적 역할이 보이기 시작한다.
무의식은 본능이 아니다.
오히려 과거 경험과 학습을 통해 만들어진 심리적 구조다.
그리고 그 구조를 의식 위로 올리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무의식에 끌려가지 않고,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주체로 거듭나게 된다.